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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관람불가라는, 소설책에서 보기 힘든 문구가 적혀있는데 그래서 책 DB에서 검색이 안되나. 호러 소설이라 잔인해서 19세인가 했는데 그것보다 내용이 야하고, 그 수위가 거부감이 드는 정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우엑. 잔인하기도 하지만, 잔인한걸로 치면 기시 유스케의 소설이 100만배는 더 잔인했지. -_- 어쨌든 19세 딱지는 단순히 책 홍보수법인 것으로 보임. 그렇게 따지면 P2P에서 쉽게 다운받을 수 있는 그 자료들이나 19세 접근금지 좀 걸어놔라. 어리고 착한 아가들을 변태들로 만들지 말고. (* 변명 : 나는 이 책이 19세라 읽은것이 아니라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제목을 따왔다길래 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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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 "이 책의 결말을 읽는 순간 당신은 다시 첫 장을 열게 될 것이다"라고 했는데 정말 결말 읽자마자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에 첫 장부터 차근차근 다시 읽어봤다. 이런 탐정소설은 처음이라 작가의 섬세한 트릭에 한동안 멍했다. '전지적 작가'를 믿을 수 없으면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누구의 관점을 믿고 시선을 따라야 할까. 흔히 읽는 추리 소설에서 A가 범인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B였다던가, A가 사실은 이중인격이었다던가 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A가 범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저 지구 반대편의 갑돌이가 범인이었다는 결말.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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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큐언의 책에서 '드 클레랑보 신드롬'을 보았을 때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정상적인/비정상적인/그 중간 어드메에 존재하는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그것만큼 많은 종류의 정상적인/비정상적인/그 중간 어드메에 존재하는 성적 취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권의 책에서 극단적인 비정상적 욕구의 발현을 소개했지만, 그 중간 어느 지점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로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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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읽을 책은 <벚꽂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이 책과 비슷한 추리소설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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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이 시간 여행 속에서 만나고 왔던 바로 그 아인슈타인이 과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상상력이다"라고 했으니 그 시도만은 반가운 것으로 봐야겠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죽기 전까지 양자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양자 터널링 효과를 이용한 시공간 여행은 그리 반기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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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이나 장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처럼 (그러고보니 나 참 대중적인 소설만 읽는구나 -_-) 한 가족을 중심으로 한 주인공의 성장 소설. 처음부분엔 나의 어린시절을 아련히 반추해가며 읽다가, 질풍노도의 청춘기에 하염없이 동질감의 끄덕임을 반복하고, 뒷부분에 어머니의 죽음 장면이 나오면 맥없이 눈물콧물을 빼놓게 되는 그런 류. 눈이 빠지게 울다가 책을 덮고서는 "내 이런 슬픈 소설을 또 읽으면 해삼 똥구멍이다-_-!"라고 외쳐도 또다시 낚이게 되는 묘한 매력. 방황하던 주인공처럼 후회하지 말자 미리미리 효도해야지 작심삼초 후, 마늘까라는 엄마 말에 "나 책 읽고 있잖아!" 짜증내는 아메바 한 마리.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건 간단한 것이다. 이를테면 뿔뿔이 헤어져 살고 있어도, 혹은 거의 만난 일조차 없어도 부모와 자식이 '부모자식'의 관계라는 점에서는 달라지는게 없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말이 되면 그 관계는 '부모자식 사이'만큼 간단하지 않다.
단 한 번, 불과 몇 초의 사정으로 부모자식의 관계는 미래영겁까지 구속되지만, '가족'이라는 것은 생활의 답답한 토양을 바탕으로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거듭하고 때로는 스스로의 감정을 죽이기도 하면서 키워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보람도 단 한 번, 단 몇 초의 다툼으로 간단히 무너지고 마는 일이 있다.
'부모자식'은 계속해서 덧셈이지만, '가족'은 더하기 뿐만 아니라 빼기도 있는 것이다.
- pp 31~32.
막연한 자유만큼 부자유한 것은 없다. 그것을 꺠달은 것은 온갖 자유에 꽁꽁 묶여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 후였다.
넓은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원하고 가령 그것이 이루어졌다 해도 과연 참으로 행복한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새장 안에서 하늘을 날기를 꿈꾸며 지금 이곳의 자유를, 이 한정된 자유를 최대한 살려내는 때가 최상의 자유이고 의미 있는 자유인 것이다.
취직, 결혼, 법률, 도덕. 귀찮고 번거로운 약속들. 금을 그어 잘라놓은 룰. 자유는 그런 범속한 곳에서 찾아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자유의 냄새를 풍풍 풍기는 곳에는 기실 자유 따위는 없다. 자유 비슷한 환상이 있을 뿐이다.
- p 191.
고독은 사람을 기분 좋은 감상에 취하게 하고 막연한 불안은 꿈을 말하는 데 꼭 필요한 안주가 된다. 홀로 고독에 시달리며 불안을 달고 살아가는 때는 사실은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 때이며 오히려 다부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때인 것이다.
쉼표도 없이 자꾸자꾸 넘어가는 나날, 보기도 지겨운 사계절의 방문. 그것들이 쉬는 일도 없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겠지, 하고 짜증난 눈으로 바라본다. 하루하루가 그저 천천히, 영원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아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시작되어야 할 무언가가. 그 무언가가 시작되지 않는데 대한 답답함. 첫발을 떼지 못하는 데 대한 초조감. 하지만 그런 괴로움도 일단 무언가가 시작된 다음에 뒤돌아 보면 그토록 낭만적인 것도 없다.
- pp 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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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호러 소설은 세 번째. 검은 집, 푸른 불꽃, 천사의 속삭임.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양부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고등학생, 선충류에 감염되어 끔찍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묘사. 읽고나면 장면 하나하나가 떠올라 정신적 데미지가 크다. 그래도 한 번 열면 마지막 장까지 책을 놓을수가 없는 매력적인 문체의 소설들.
전의 리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기시 유스케가 소설을 쓰면서 조사를 했음직한 분야가 상당히 광범위하다. 전에 인터뷰한 것을 봤는데, 작가의 취미가 인터뷰하고 조사하면서 공부하는 거라고 했던 듯. 이번 책만 해도 일단 기생충학, 생태학, 발생학, 진화론, 생화학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등에 대한 조사가 선행된 것 같다. 배경지식이 두텁고 스토리가 탄탄하니 재미있을 수 밖에!
책 속에서 자살하는 인물들은 선충류 감염에 의해 중추신경계를 지배당하는데,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두려워했던 작가는 스스로 자살을 택하고, 동물을 무서워하던 교수는 사자 앞에 뛰어들고, 얼굴에 흉터 컴플렉스가 있던 학생은 거울 앞에서 염산에 얼굴을 담근다. 자의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트라우마 앞에 직면, 그 과정에서 느끼는 거짓 유포리아 그리고 죽음- 이 단계를 지나고나면 숙주로서의 참혹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최근 vCJD 문제도 그렇고 바이오테러는 식상한 소재이지만(이 책은 1994년에 씌어졌다. 한창 O-157 등 바이오 해저드에 관심이 높았을 때) 인간중심 관점에서 비껴나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근데 읽고나서 방에 혼자 있기가 무서워서 짐 챙겨서 집에 와버렸다. 저, 당분간 채식합니다; ㅡㅡa

10번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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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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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바의 여운을 길게 남기려고 산 책인데 후회만 가득.
급하게 쓴 책인 듯 하다. 글 중간에 <카핑 베토벤>이 언급되는 걸 봐서 작년에 영화가 나온 이후로 쓰여진 것 같고,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암호바퀴 같은 것들이 쓸데없이(!) 등장하는 걸 보니 다빈치 코드의 인기를 등에 업고 벤치마킹한 듯 하다. 개인적으로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 디지털 포트리스 등을 재미있게 읽는 건 스토리 배경이 되는 프랑스, 로마, 바티칸, 스위스 CERN에 대한 지식이 철저히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근데 이 책의 스토리는 베토벤의 10번 교향곡, 것도 7악장까지 완전하게 작곡된 작품이 존재하고 있고 결국 프리메이슨이 강탈(?)했다는, 철저하게 픽션인 스토리가 주가 된다. 뭐 소설이니 어느 정도 납득한다 치자. 근데 소재들이 쓸데없이 남발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19세기 빈의 베토벤과 베아트리체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랑 이야기는 도대체 왜 등장하는게며, 쓸데없이 암호를 남발하는 것은 뭣 때문이며, 토마스의 동성애인/ 보나파트르 황태자 부부/ 알리시아가 스토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까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다빈치 코드를 벤치마킹 했으면 반전이라도 죽여줘야 되는데, 아~ 사실은 얘가 범인인 줄 알았는데 쟤였네? -_- 장난합니까.
베바에 빠져 베토벤과 클래식에 급 관심이 생긴 나 같은 폐인들 덕에 요새 베스트셀러 목록에 계속 떠 있는데, 베바 한 번을 더 복습하는게 낫다고 생각함. 아님 <카핑 베토벤>이나 <불멸의 연인>을 한 번 더 보던가. 낚이지 말 것. 절대 비추.
+) 부록으로 딸려온 10번 교향곡 1악장은 베토벤이 끄적끄적 남긴 악보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베토벤이 호른 파트로 생각해놓은 악절이 클라리넷으로 연주될 수도 있는거고, 강마에 말대로 음악을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곡이 될 것이니 그리 기대하지 않고 듣는게 좋은 듯.
심심풀이로 읽은 걸로 때우고 지나칠까 하다가 사서 읽는 소설은 또 오랜만이라 짧게 리뷰를 남긴다.
상실의 시대.
Where am I? 뜻밖에도 주인공과 오버랩되는 인물은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 마지막에 미도리에게 전화를 하면서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 장면. 연남동 큰 집에서 쫓겨나 고시원, 대학교 벤치, 정체불명의 퀴즈공간을 전전하다 책방 다락방에 안착하고 나서도, '푸드덕 푸드덕 날아다니는 직박구리'의 악몽을 떨쳐내지 못한다. 결핍된 가정에서 자라난 주인공의 태생적인 상실이기도 하고,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불행한 현실을 사는 20대들의 구조적인 상실이기도 하다. 마지막장을 넘길 때까지 작가가 상실의 시대를 모티브로 했을 거라는 억측이; 강하게 든다. 벽속의 요정 캐릭터가 미도리와 닮았고, 뜬금없게도 나오코와 '옆방삼겹살녀'의 죽음이 연결된다. 정사씬도 매우 닮았다.
운이 지배하는 세계.
퀴즈쇼 밖의 세계는 실력이 지배하는 세계인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위해 토플 공부를 하고 지원한 회사에 후드득 후드득 떨어져서 결국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는 주인공은 실력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나. 지원한 회사마다 떨어지는 이유는 가정환경이 불안해서라는데. 타고난 장애는 또 어쩔 것이며, 대물림되는 가난은 또 어쩔 것이오. 창문이 없는 고시원방 빌게이츠의 창에서 만난 사랑과 운명같이 이어지는 것이, '운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나름의 해피엔딩? 에라이. 작가바보. -_-
다만 빼앗긴 1000만원이 아까울 뿐이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은 여러가지 스펙트럼을 가지는 말이다. 보통 누군가를 좋아한다-라고 말하면 이성적(이란 표현은 동성애를 배제하는 것 같아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으로 좋아한다고 보는게 대부분이다. 자신의 맘은 자신이 가장 잘 알겠지만, 좋아한다는 말은 단순한 애정 그 이상의 의미이다. 단순히 말이 통한다는 이유로, 혹은 존경 혹은 동경의 의미로, 가끔은 필요에 의해서 사람을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상상력이 부족한 이 사회는 이 모든 좋아한다는 감정을 그저 하나의 감정으로 뭉뚱그려 포장해내니 문제. 왜 '좋아한다'는 말을 필두로 서평을 시작하려 하느냐면, 내가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을 읽고 느낀 감정이 '좋다'는 단순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밤 11시쯤 꺼내서 새벽 3시까지 쉬지 않고 읽어낸 책인데,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놓고 느낀 감정을 참 좋다, 는 것.
흠. 예를 들면, '비밀 과외'란 단편에서 운동권 과외 선생(혹시 나? -_- 나도 가끔 아가들에게 부조리한 사회상에 대해 열변을 토하곤 한다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좋았다. '삼풍 백화점'에서 가장 맘에 남은 구절이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를 사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인데 그 구절을 읽는 순간 느끼게 된 가슴찌릿함이 좋았다, 내게. '오늘의 거짓말'에서 죽은 전 대통령의 헬스기를 보게 된 어이없는 장면도 참 좋았다. 아,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채린'이 나오는 단편에서 친구와 같이 15년전의 패션을 꺼내입는 주인공도 참 좋았다. 내 글을 이해하시겠는지. '좋다'는 말엔 참 여러가지 감정이 함축되어 있다. 그리고 종종 그런 감정들은 다른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다. 차곡차곡 맘속에 쌓여있다가 일상에서 비슷한 장면들을 만났을때 '아 그게 이거였어!'하며 아릿하게 꺼내놓을 뿐이다.
장편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와 단편 '낭만적 사회와 사랑'을 읽을때까지만 해도 정이현이란 작가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예쁜 글로 표현해내는 작가인줄 몰랐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된장녀의 일상'을 그려놓은, 나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고급 작가라고 생각했을 뿐. 하지만 이번 단편집에서는 스물세해의 삶을 살아온 내가 느끼지 못했던 복잡한 삶의 아포리즘들이 '달콤한 나의 도시' 속 그 예쁜 문체와 일러스트만큼 예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아직 '좋다'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한 건 내 표현력이 딸리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녀만큼 삶을 경험하지 못한 생각이란 생각도 든다. 그녀는 한해한해 살아가면서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란 희망적인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이를 먹지 않는 소설속 '양채린'처럼 성장하는 모습 속에서는 변하지 않은 '좋음'을 느낄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단지 우리는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상상력'으로 그녀의 소설을 만나기만 하면 되니, 좋아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