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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한 신간. 방학 두 달동안 수업을 들었던 문지문화원 현대물리학 선생님이 집필하신 책이다.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표준모형 등 머리 아픈 이야기들이지만 학부시절 운동권 생활을 통해 터득한 (술자리에서 오고갈법한) "스토리텔링" 기술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인가 전문용어 없이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엘레건트 유니버스> 1장에서 브라이언 그린이 러더퍼드의 말을 인용한 말. 그린은 러더퍼드의 가르침을 따라 책을 썼고, 저자인 이종필 선생님도 이를 충실하게 반영해 책을 쓰신 듯 하다. 책을 샅샅이 뒤져봐도 나오는 (전문적인) 수식은 반가운 타임 디펜던트 슈뢰딩거 방정식과 반갑지 않은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 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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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읽는 책에서 포퍼 아저씨는 칸트와 페스탈로치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면서 "다른 사람의 정신을 해방시키고 그들이 비판적 접근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은 모든 지식인의 임무"라고 했다. 최근 LHC가 가동되면서 hardron 충돌에 의해 생기는 블랙홀이 지구를 잠식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믿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 걸 보면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만큼의 강도, 그 이상으로 이론물리학이 실제적인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는 걸 알겠다. 그리고 올바른 지식이 우리를 오도된 공포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다음은 미니블랙홀과 LHC에 대한 '올바른' 지식.
"어떻게 알았는지 일부 사람들은 LHC가 가동되면 거기서 블랙홀이 만들어져 전 세계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파멸할 것이라며 LHC의 가동 중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주장은 별 근거가 없다. LHC에서는 'LHC 안정성 사정집단'을 운영하면서 보고서를 낸다. 지난 2003년에 이어 2008년에 나온 보고서를 보면 미니 블랙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보고서는 미니블랙홀 외에도 온갖 기괴한 현상들이 생길 가능성을 점검했으나, 지구의 안정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 근거로 보고서는 우주선(cosmic ray)이 지구나 태양 등 다른 천체와 충돌하는 비율을 들고 있다. 강력한 우주선은 LHC보다 훨씬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보고서는 LHC에서 예상되는 가속입자들의 충돌횟수보다 매초 약 10조배나 많은 횟수의 충돌이 고에너지 우주선과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추정했다. 우주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생각하면 지금까지 약 10^31번에 해당하는 LHC 실험을 우주 자체가 수행해 온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관측하는 모든 행성과 별과 은하 등등이 매우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보고서는 LHC 실험이 지구에 큰 위험이 되지 않을 것으로 결론내린다. 가속기에서 만들어지는 미니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은 거시적인 스케일에 비해 너무나 작다. 게다가 이런 블랙홀의 수명이 무척 짧아서 전 세계를 집어삼킬 여유가 없다. <pp20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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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호러 소설은 세 번째. 검은 집, 푸른 불꽃, 천사의 속삭임.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양부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고등학생, 선충류에 감염되어 끔찍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묘사. 읽고나면 장면 하나하나가 떠올라 정신적 데미지가 크다. 그래도 한 번 열면 마지막 장까지 책을 놓을수가 없는 매력적인 문체의 소설들.
전의 리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기시 유스케가 소설을 쓰면서 조사를 했음직한 분야가 상당히 광범위하다. 전에 인터뷰한 것을 봤는데, 작가의 취미가 인터뷰하고 조사하면서 공부하는 거라고 했던 듯. 이번 책만 해도 일단 기생충학, 생태학, 발생학, 진화론, 생화학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등에 대한 조사가 선행된 것 같다. 배경지식이 두텁고 스토리가 탄탄하니 재미있을 수 밖에!
책 속에서 자살하는 인물들은 선충류 감염에 의해 중추신경계를 지배당하는데,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두려워했던 작가는 스스로 자살을 택하고, 동물을 무서워하던 교수는 사자 앞에 뛰어들고, 얼굴에 흉터 컴플렉스가 있던 학생은 거울 앞에서 염산에 얼굴을 담근다. 자의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트라우마 앞에 직면, 그 과정에서 느끼는 거짓 유포리아 그리고 죽음- 이 단계를 지나고나면 숙주로서의 참혹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최근 vCJD 문제도 그렇고 바이오테러는 식상한 소재이지만(이 책은 1994년에 씌어졌다. 한창 O-157 등 바이오 해저드에 관심이 높았을 때) 인간중심 관점에서 비껴나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근데 읽고나서 방에 혼자 있기가 무서워서 짐 챙겨서 집에 와버렸다. 저, 당분간 채식합니다; ㅡㅡ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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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생물학 수업 제대로 들어보려고 아침까지 챙겨먹고 나갔더니 휴강일세. ~(-_-)~ 에세이 참고 도서 찾는다고 학관 서점 갔다가 이 책에 제대로 말려서 한 권 전부 읽고 나왔다.
베토벤이 친구들, 짝사랑하던 여인들, 의사, 그렇게 아끼던 조카 카를에게 보냈던 편지 모음집이다. 괴팍한 천재로만 알고 있었는데 편지들을 읽어보니 예술가다운 섬세함과 로맨틱함을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음악가였다. <카핑 베토벤> 에서도 그랬지만 청력을 잃어가면서 느끼던 고뇌들이 그의 필체로 고스란히 드러나있어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아무리 樂聖이라고 해도 음악가로 청력을 잃는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후대에 와서 그가 청각 장애를 극복했다느니, 절망을 이겨냈다느니 하는 말조차 그의 삶을 표현하기에는 가벼워보인다. 그를 그의 위대한 작품들로 평가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평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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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 못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여기 네가 이렇게 사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페라를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네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물론 음악계에서도.
- 1806년 메모에서
너는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오직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너 자신 안에, 너의 예술 안에 있는 것 외에 너를 위한 행복은 이제 없다. 오, 신이여! 나 자신을 정복할 힘을 주소서! 이 세상의 삶과 저를 결합해주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A와 함께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 1812년 일기에서
운명은 결코 나를 꺾지 못해.
그대 팔에 날아가 안길 때까지 그대 곁을 내 집이라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그대 품에 안겨 내 영혼을 정령의 세계로 떠나보낼 수 있을 때까지, 그날이 아무리 멀다 해도 방황을 멈추지 않겠소.
-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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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 요 책을 사갈까 말까 입실론초 고민했던 것은 부록으로 나왔던 CD가 탐나서인데, 피아노 소나타 8번 2악장, 14번 1악장, 23번 1악장, 교향곡 5번 1악장, 6번 1악장, 9번 4악장, 바이올린 협주곡 5번 1악장.. 암튼 내가 좋아하는(=잘 알려진?) 악장만 콕콕 찝어서 모아놨는데 몹시 사고 싶었으나 참기로 했다. ;ㅁ;
토벤이 아저씨, 난중에 돈 많이 벌어서 전집 살께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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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만 많아진다. 또 제목에 낚인 줄 알았다.
수학과외를 몇 년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선생님, 수학은 왜 배워야 되는거임?" 이라는 질문이다. 처음에는] 가게에 가서 거스름돈을 받으려면 사회는 몰라도 최소한 수학은 배워야 되지 않겠냐? 고 대답. "그럼 산수 할 줄 아는데 수열은 왜 배우고 통계는 왜 배워요?"하는 질문에 짬이 좀 생기고 나서는] 쌤처럼 좋은 대학 가려면 닥치고 배워. 라고 대답. 포퍼 아저씨 책에서 '수학은 일종의 언어체계이다'라는 주장을 만나고 나서는 비로소 선생답게] 수학은 일종의 언어체계임. 어려서 배운 한국어체계에 익숙해져 쌤이랑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수학적 사고체계는 현대사회에서 필수적인 블라블라.. 프랑스에서는 법대 입학에도 수학 시험이 필수인데 미국 학생들의 수학능력과 비교해보면 블라블라(이 말은 책 뒷부분에서 존 듀이의 주장으로 정확하게 되풀이된다!). 과외쌤으로 난 촘 촹인듯!이라고 생각했지만 애들은 별로 수긍하지 않는게 문제임.
아무튼 데블린의 주장도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다. 수학적 능력이 언어능력을 새롭게 사용한 산물이라는 것. 주장을 전개하면서 언어 추론 능력에 대한 진화 과정이나 언어의 공통된 통사 구조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것은 매우 지루하지만, 내가 연예인의 자살에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이는 것과 쉽게 소인수분해되는 차 번호판을 보면 매우 흡족해지는 것이 사실은 비슷한 대상화에 의한 관심이라는 것!이라는 부분이 매우 흥미롭다. 언어가 주는 가장 큰 이점은 가십에 있고, 가십은 타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그들의 삶에 이성적인 추론을 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대상을 수 혹은 수적 대상이라고만 바꾸어 놓으면 수학과 동의어가 된다.
뭐 그렇다고 수학을 증오하는 내 과외아그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니들은 모두 기초적인 '수학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다만 수학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수학의 세계가 (진화론적으로 우리에게 가깝지만은 않은) 고도로 추상화된 세계이고 그 추론 과정에서 고도의 엄격함이 요구되기 때문이라고, 다만 중요한 것은 니들이 수학을 공부하려는 의지-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아그들은 수학 대신 나를 증오하게 될 것이다. -_- 암쏘쏘리...
...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10번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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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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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바의 여운을 길게 남기려고 산 책인데 후회만 가득.
급하게 쓴 책인 듯 하다. 글 중간에 <카핑 베토벤>이 언급되는 걸 봐서 작년에 영화가 나온 이후로 쓰여진 것 같고,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암호바퀴 같은 것들이 쓸데없이(!) 등장하는 걸 보니 다빈치 코드의 인기를 등에 업고 벤치마킹한 듯 하다. 개인적으로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 디지털 포트리스 등을 재미있게 읽는 건 스토리 배경이 되는 프랑스, 로마, 바티칸, 스위스 CERN에 대한 지식이 철저히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근데 이 책의 스토리는 베토벤의 10번 교향곡, 것도 7악장까지 완전하게 작곡된 작품이 존재하고 있고 결국 프리메이슨이 강탈(?)했다는, 철저하게 픽션인 스토리가 주가 된다. 뭐 소설이니 어느 정도 납득한다 치자. 근데 소재들이 쓸데없이 남발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19세기 빈의 베토벤과 베아트리체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랑 이야기는 도대체 왜 등장하는게며, 쓸데없이 암호를 남발하는 것은 뭣 때문이며, 토마스의 동성애인/ 보나파트르 황태자 부부/ 알리시아가 스토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까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다빈치 코드를 벤치마킹 했으면 반전이라도 죽여줘야 되는데, 아~ 사실은 얘가 범인인 줄 알았는데 쟤였네? -_- 장난합니까.
베바에 빠져 베토벤과 클래식에 급 관심이 생긴 나 같은 폐인들 덕에 요새 베스트셀러 목록에 계속 떠 있는데, 베바 한 번을 더 복습하는게 낫다고 생각함. 아님 <카핑 베토벤>이나 <불멸의 연인>을 한 번 더 보던가. 낚이지 말 것. 절대 비추.
+) 부록으로 딸려온 10번 교향곡 1악장은 베토벤이 끄적끄적 남긴 악보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베토벤이 호른 파트로 생각해놓은 악절이 클라리넷으로 연주될 수도 있는거고, 강마에 말대로 음악을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곡이 될 것이니 그리 기대하지 않고 듣는게 좋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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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와 과근사 레포트를 위한 간단한 정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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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주의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와 아인슈타인의 논쟁.
어떤 이론이 관찰 가능한 양들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하다는 조작주의적 정의를 신봉하는 하이젠베르크는 물리학의 이론이 관찰 가능한 양만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아인슈타인의 의견에 놀란다. 왜냐하면 이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기초가 '절대 시간은 없다'는 것이며 운동계에서든 정지계에서든 시계가 표시하는 시간(=관찰 가능한 양)만이 시간을 결정하는 기준(=물리학의 이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된다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런 철학을 이용하기는 하였지만 무엇을 관찰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관찰에 우선하는 '이론'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관찰하였다고 주장하려면 적어도 자연법칙의 실질적인 면을 '알고 있어야' 한다.
상대성이론의 예를 들자면 진동계에서 시계로부터 관찰자의 눈까지 이르는 광선은 고전 물리학이 기대했던 대로 정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고 진동하는 원자-스펙트럼-망막에 이르는 광선의 복사에 대한 모든 기구는 맥스웰의 법칙에 따라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이젠베르크를 포함한 당대 과학자들이 오해한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마하의 주장("한 이론이란 사유경제의 원칙 아래서 이뤄지는 관찰의 총괄에 지나지 않는다.")을 계승했다는 것인데 아인슈타인은 마하가 지나치게 소박한 실재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명제는 단순한 감각 인상의 총괄 그 이상이다. 1. 한 명제는 미래에 나타날 수도 있는 감각인상에 관한 많은 진술을 포함하며 2. 감각인상으로부터 표상과 사물들을 추론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조작주의는 아원자 세계(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전자의 궤도) 역시 '직접'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전과정에서 한 원자가 방사하는 복사로부터 진동수와 원자 안에 있는 전자의 진동수에 해당하는 진폭을 유도해내는 등의 과정을 통해서 이를 전자궤도의 가시적인 '대표'로서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양자물리학자는 관측하는 것을 지금까지의 언어(=고전물리학의?)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여기에서 새로운 양자역학적 변호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주장이다. 하이젠베르크 역시 이 새로운 시도로서 수학적인 도식을 도입했다고 말하고 있으나(=이론) 아직도 고전물리학의 언어가 사용되는 실험에서 양자역학은 이해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단계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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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논쟁 : 양자론의 불연속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양자론은 확실히 다른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는데 1. 닐스 보어의 주장에서 "원자의 궤도는 안정하다." 2. 또 다른 주장으로 자연의 비연속성, 불연속성. 양자역학에서 원자에 의한 빛의 복사에 대해 말할 때 두 측면을 모두 이야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원자에 의한 빛의 복사에 대해 말할 때 1. 정상 상태의 2. 불연속적인 에너지의 양 을 계산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에게 이런 불연속적인 빛의 radiation에서 도대체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표상은 옳은 것인지 하이젠베르크에게 묻는다. 그러나 이러한 이행은 일반적인 개념, 즉 일반적인 공간과 시간의 한 과정으로는 서술할 수 없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이 불연속성을 애매하게 "중간상태가 존재할 것 같다"라고 대답하는데 이를 무척 위험한 사고라고 일축한다. 과학자가 원하는 것은 사람이 자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지가 아니라 자연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이다. 원자가 한 정상상태로부터 radiation을 통해 다른 상태로 이행할 때 그 원자는 실제로 무슨 작용을 하고 있는지?
어쨌든 이 당시(아마 지금도) 이 문제는 단순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하이젠베르크는 수학적인 도식의 단순성이 그 결과를 정확하게 이론에 따라 계산할 수 있는 실험을 틀림없이 고안해낼 것이며 이를 이론이 자련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물론 마지막까지 아인슈타인은 그 자연법칙의 단순성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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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테 헤르만과의 논쟁 : 칸트 철학의 인과율과 양자역학.
칸트 철학에서의 인과율이란 경험에 의하여 기초가 설정되거나 반증될 수 있는 경험적 주장이 아니라 "모든 경험을 위한 전제"이며 칸트가 a priori라고 부른 사고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를 파악하는 감각인상에 법칙이 전제하며 원인과 결과의 일의적인 연결을 통해 사람이 어떤 지각을 객관화할 경우 이 법칙이 전제되어야 한다. 모든 자연과학은 인과율을 전제해야하므로 인과율이 성립되는 한에서 자연과학이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인과율을 해이하게 했고, 사고의 도구로서의 인과율을 거부한 양자역학이 자연과학으로 남아있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 그레테 헤르만의 주장.
우선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통계학적인 설명을 시도하였으나 그 통계적 일반화 자체에서 어떠한 원리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원인 그 자체가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실수를 범한다. 헤르만은 그 부분을 원자물리학의 과오로 지적하면서 그 원인을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연구를 거듭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는 그 통계적 일반화가 이미 완전한 지식이며 여기에 결정요소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지식은 완전하다는 것을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고 반박한다.
여기에서 카를 프리드리히가 등장해 칸트 철학의 전제들을 좀더 정확하게 분석한다. 칸트는 물자체(Ding an sich)에 대해 사람들이 아무 것도 언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다만 지각의 객체이며 지각의 객체를 사람들이 물자체의 모델과 엮어놓아 생각하는데 이 경험의 구조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