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왕 4명 중 1명이 독살당했다? 누가, 왜 그들을 죽였는가? 조선 왕 독살사건.
인종, 선조, 소현세자,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 독살설이 전해져오는 조선시대 임금들. 조선 초기 형제를 죽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왕자의 난이 있었고, 조카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라 결국 조카에게 사약을 내린 임금도 있었고(세조), 신하들에 의해 폐위되어 유배된 임금도 있었지만(연산군), 독살이란 이들과 다른 궤를 하고 있는 왕권 축출의 비정상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록에 남겨 후세에게 전해질만큼 정당성이 있는 것이 아닌, 정당성은 없지만 자신과 자신의 黨을 위해 은밀하게 이루어져 결국 절대 권력의 임금을 비밀스럽게 죽여가는 독살. 이 책을 읽고나서 독살설 중 일부는 근거가 명백하여 실제로 독살당했다고 믿어질만큼 분명한 것이지만(예를 들어, 소현세자나, 정조의 죽음) 몇 몇은 임금의 죽음의 앞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의료 기술과 지식의 부족으로 일어난 필연적인 죽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독살이었는지 아니었는지 그 여부는 무덤 속에 있을 당사자들만 알 것이지만.
얼마 전, 공리/주윤발 주연의 '황후화'를 보았다. 황제 역을 맡은 주윤발은, 황후가 자신의 전 부인의 아들인 왕자 1과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약에 '부자'를 섞어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 영화의 스토리를 이어가는 것은 죽이려는 황제와, 이를 눈치채고 황제를 죽이려는 황후의 위험한 줄타기이다. 이 책은 '황후화'를 보기 훨~씬 전부터 읽으려고 하던 책이긴 하지만, '부자'가 담긴 약을 먹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국화를 수놓던 황후의 이미지가 곤룡포를 입은 우리나라의 왕들과 오버랩되어 몰입하기 쉬웠던 것 같다.
조선은 쇠퇴기, 멸망기에 접어든 이후에도 무려 3세기 이상을 존속한 특이한 국가였다. 이런 기록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다. 지배계급인 사대부들이 피지배계급인 농민들 위에 군림했던 조선의 사회 체제는 임진왜란으로 사실상 종말을 고한 셈이었다. 일본이 침략했을 때 지배층들이 도망가기 바빴던 그 순간, 조선 지배 체제는 붕괴한 것이었다.
임진왜란 전까지, 그러니까 작가가 말한 것처럼 조선이라는 왕조가 비정상적으로 수명을 이어가기 전까지의 독살사건은 영화에서처럼 왕실 사이의 권력다툼의 산물이었다. 자신의 아들인 세자를 왕위에 올려놓으려고 왕위에 있는 배다른 자식인 인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문정왕후(이 분은 여인천하에서 전인화씨가 연기했던 바로 그 분이다.)가 그렇다. 그리고 책에 나오지 않았지만, 조선 왕들 중 가장 어린 나이로 가장 비참한 죽임을 당한 단종의 경우에도 수양대군이라는 왕실거대권력과의 싸움에서 졌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입헌 군주제의 나라도 아니고 왕이 단순히 제사장으로 군림하는 고대 일본과 같은 경우도 아니었기에, 신하의 권력이 개입하지 않았던 초기 조선의 독살(혹은 살인)사건이 왕실의 권력다툼의 산물이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그러니까 지배층들이 '지배를 위한 지배'를 본격화한 임진왜란 이후 상황은 바뀌게 된다. 이 후 독살사건들은 거의 신하와 왕 또는 신하의 당과 왕의 당의 차이로 생기는 것들이다. 국사 교과서에서 지겹게 다루었었던 남인 서인 노론 소론 의 등장이 바로 이 시점부터였다. 더이상 신하들은 왕의 말에 절대복종하지 않고 (물론 조선 전기에도 왕의 권력과 신하의 권력은 나름 균형을 이루었지만-) 자신과 자신의 당의 생존을 위해 왕의 말을 거역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반정/독살등으로 왕위를 교체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독살 혹은 반정등으로 표출되는 이들의 극단적인 권력욕이 국가를 존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예를 들면, 조선 초 중종반정의 경우. 연산군이 계속 왕위에 있었더라면 이후 조선의 발전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지배층의 지배를 위한, 자신의 당이 잘먹고 잘살기위한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것에 있다. 이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학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대학자 송시열의 이중성을 - 그 이중성이 당시 사회체제가 안고 있는 당연한 모순점이라고 하더라도 - 이 책을 통해 알게 되고 경악했다. 이들이 죽이려고 했던 것은 왕과 자신의 반대파였지만, 결국 그들이 죽인 것인 무고한 민중들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배층들의 모순에 휘둘리는 것은 불쌍한 민중들일 뿐.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지만, 정말 만약 만약에 10년정도만 더 살아서 계속 정치를 했었더라면 이 후의 역사가 얼마나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현세자가 죽지 않았었더라면 좀 더 열린 세계관을 가진 조선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현종이 조금만 더 살아서 북벌을 진행했더라면 만주 벌판이 지금 우리의 것일까, 정조가 10년만 더 살아서 개혁정치를 추진했다면 어땠을까 등등. 우행시에서 유정이 말한것처럼 딱 100년 후라면 여기에 있는 누구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지 못할 것이다. 100년후를 장담하지 못하는 삶인데 조금만 객관적으로 나라의 미래를 바라보았었더라면, 조금만 이타적으로 생각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기사, 나비의 날개짓 하나가 폭풍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세상, 그 중에서 특히나 치열하고 복잡했던 왕실이었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그들도 절대 알지 못했던 어떤 작은 요인으로 또 다른 역사를 만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세상은 그 많고 많은 가능성들 중에 그래도 좋은 쪽이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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