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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이나 장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처럼 (그러고보니 나 참 대중적인 소설만 읽는구나 -_-) 한 가족을 중심으로 한 주인공의 성장 소설. 처음부분엔 나의 어린시절을 아련히 반추해가며 읽다가, 질풍노도의 청춘기에 하염없이 동질감의 끄덕임을 반복하고, 뒷부분에 어머니의 죽음 장면이 나오면 맥없이 눈물콧물을 빼놓게 되는 그런 류. 눈이 빠지게 울다가 책을 덮고서는 "내 이런 슬픈 소설을 또 읽으면 해삼 똥구멍이다-_-!"라고 외쳐도 또다시 낚이게 되는 묘한 매력. 방황하던 주인공처럼 후회하지 말자 미리미리 효도해야지 작심삼초 후, 마늘까라는 엄마 말에 "나 책 읽고 있잖아!" 짜증내는 아메바 한 마리.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건 간단한 것이다. 이를테면 뿔뿔이 헤어져 살고 있어도, 혹은 거의 만난 일조차 없어도 부모와 자식이 '부모자식'의 관계라는 점에서는 달라지는게 없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말이 되면 그 관계는 '부모자식 사이'만큼 간단하지 않다.
단 한 번, 불과 몇 초의 사정으로 부모자식의 관계는 미래영겁까지 구속되지만, '가족'이라는 것은 생활의 답답한 토양을 바탕으로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거듭하고 때로는 스스로의 감정을 죽이기도 하면서 키워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보람도 단 한 번, 단 몇 초의 다툼으로 간단히 무너지고 마는 일이 있다.
'부모자식'은 계속해서 덧셈이지만, '가족'은 더하기 뿐만 아니라 빼기도 있는 것이다.
- pp 31~32.
막연한 자유만큼 부자유한 것은 없다. 그것을 꺠달은 것은 온갖 자유에 꽁꽁 묶여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 후였다.
넓은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원하고 가령 그것이 이루어졌다 해도 과연 참으로 행복한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새장 안에서 하늘을 날기를 꿈꾸며 지금 이곳의 자유를, 이 한정된 자유를 최대한 살려내는 때가 최상의 자유이고 의미 있는 자유인 것이다.
취직, 결혼, 법률, 도덕. 귀찮고 번거로운 약속들. 금을 그어 잘라놓은 룰. 자유는 그런 범속한 곳에서 찾아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자유의 냄새를 풍풍 풍기는 곳에는 기실 자유 따위는 없다. 자유 비슷한 환상이 있을 뿐이다.
- p 191.
고독은 사람을 기분 좋은 감상에 취하게 하고 막연한 불안은 꿈을 말하는 데 꼭 필요한 안주가 된다. 홀로 고독에 시달리며 불안을 달고 살아가는 때는 사실은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 때이며 오히려 다부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때인 것이다.
쉼표도 없이 자꾸자꾸 넘어가는 나날, 보기도 지겨운 사계절의 방문. 그것들이 쉬는 일도 없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겠지, 하고 짜증난 눈으로 바라본다. 하루하루가 그저 천천히, 영원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아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시작되어야 할 무언가가. 그 무언가가 시작되지 않는데 대한 답답함. 첫발을 떼지 못하는 데 대한 초조감. 하지만 그런 괴로움도 일단 무언가가 시작된 다음에 뒤돌아 보면 그토록 낭만적인 것도 없다.
- pp 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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