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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오해 상세보기
스티븐 제이굴드 지음 | 사회평론 펴냄
이 책은 시대의 조류에 편승해서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생물학적 결정론의 역사에 얽힌 많은 자료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과학 이론, 역사, 철학, 사회, 문화를 모두 다루면서 수많은 개념과 관점들의 대비, 다의적(多義的) 비유 등으로 생물학의 핵심적인 개념들을 극적으로 대비시켜낸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리고 어떤 권리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감금하고, 괴롭히고, 추방하고, 채찍질하고 죽이는가? 그들은 자신이 괴롭히고, 채찍질하고, 죽이는 사람보다 나은가? 그리고 그 답으로 그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는지 여부에 대한 주장들을 접하게 되었다. 두개골이나 그 밖의 측정에 의해 범죄 성향을 알아낼 수 있을까? 유전은 범죄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까? 선천적인 부도덕성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 톨스토이의 <부활> 중

근대에 들어와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려는 수단으로 과학을 오용하는 일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어려운 예를 찾을 것도 없이 최근 가장 황당했던 주장을 두 개만 고르자면, 그랜드캐년에서 노아의 홍수 기록을 발견했다고 성경의 무오류설을 옹호하는 주장과, '남자는 배가 고플수록 덜 예쁜 여자를 가지고 싶어한다=_='는 '과학적 상관관계'를 밝혀냈다는 찌라시 신문기사 정도. 후자가 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과학자들이 편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밝혀냈을 때의 그 '객관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부적절하고, 지적으로 불건전하고, 고도로 유해하기까지- p. 196

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두개골 크기 차이를 통해 흑인,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 - 범죄심리학에서 골상차를 이용한 롬브로소의 주장은, 얼마전 읽었던 '검은 집'에서 사이코패스를 구별하기 위해 심리학자가 언급했던 사례이기도 하다. 얼마나 그럴 듯 한가. - 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분리하려는 브로카의 시도, 빈부격차를 유전자 결정론으로 해석하려던 터먼의 (조작된) IQ 측정 실험, 요인분석을 통해 물화된 'g' 개념을 통해 사회적 차별의 정당화의 기반을 마련한 버트, 서스턴, 스피어맨의 시도를 위험한 것으로 규정한다. 이런 시도들이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유해'하기까지 한 것은 이것이 과학자들의 인격이나 지적 수준에 상관없이 '피암시성'에 의해 과학자 스스로에게나 연구결과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객관화된 진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피암시성(suggestibility)은 무의식적 편향에 의해 집착 또는 '객관적인' 정량적 자료가 선입관에 이끌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경향성을 말한다. (IQ 테스트의 창시자 비네는) 편향이 감추어지고 과학자가 자신의 객관성을 확신할 때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피암시성은 ... 충분히 의식하는 행동보다 어중간하게 의식하는 행동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피암시성이 위험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p. 255

배럭 오바마 아저씨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편견이 좀 사라질까? -_- 흑인이 백인에 비해 덜 진화된 인종이라는 뿌리깊은 편견을 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려고 했던 끈질긴 시도 - 두개골 측정, IQ 측정 실험의 표면 아래에는 일부 과학자의 단선전 진보관이,

단선적 진보 - 원시에서 진보된 상태로 상승하는 단일한 척도가 다양성을 질서화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가설이다. 진보의 개념은 오랜 유래를 가진 뿌리깊은 편견이고, 진보의 개념을 당호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교묘한 영향력을 미친다. - p. 273

읽다가 어려워서 토할 뻔 했던 요인 분석 파트에서 ,IQ가 뇌의 특정 부분에 존재하는 물화된 '지능'을 측정하는 것으로 유전적으로 결정되어져 있기 때문에 지능차에 의한 사회적 격차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은, 유사한 데이터에서 규칙성을 찾아내기 좋아하는 인간의 특성에서 나오는 경향성이라고 설명한다. (플라톤 아저씨 때문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사상은 오랫동안 소멸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보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그 밑에 내재하는 실재(reality)의 표면적이고 불완전한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철학적인 전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통계가 주는 매력의 상당부분은 많은 데이터를 요약한 추상적 척도가 데이터 그 자체보다 실제적이고 근본적인 무엇을 나타낼 것이라는 본능적인 느낌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느낌을 절대 믿지 말라! -p. 392

그리고 많은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과학자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 활동에 있어서 개인적,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맺는다.

사회적 선호와 생물학적 관여를 연관시킬 수 있는 단순한 방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종, 계급, 성 등을 모두 항구적인 생물학적 열등성과 연관시키는 유전적 결정론의 악당이 존재한다는 식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전인류의 환원불가능한 가치를 찬양하는 환경주의자로서의 선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밖의 편향들은 복잡한 방정식으로 인수분해되어야 한다. 유전자 결정론은 서열화와 차별화된 능력에 대한 신념과 결부될 때에만 특정 집단에 열등성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도구가 된다. - p. 486

과학의 오랜 전통은 이론 변화가 관찰에 의해 도출되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 극도로 단순화된 정칙을 믿기 때문에 자기자신의 해석 변화는 새롭게 발견된 사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을 나타낼 뿐이라고 가정하곤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세계의 혼란스럽고 모호한 사실성에 대해 부과하는 정신적 강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 과학자는 이론이 오직 관찰의 결과로 발생한다는 신화를 받아들여 자신의 영혼에서 비롯되는 개인적, 사회적 영향을 철저히 성찰하지 않으면, 자신의 견해를 변화시킨 원인을 간과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새로운 이론에 의해 부호화된 뿌리깊고 폭넓은 지적 전환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 pp. 589~590

그러면 이렇게 과학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반증이 과학의 부정적 측면을 나타낸다는 인상이 널리 유포되어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일관되게 인종의 서열화가 사회적 편견임을 주장했지만, 그 배경에는 단선적 진보라는 관념이 깔려있으며 이 단선적 진보라는 관점은 과학이 어떻게 발견해왔는지에 관한 잘못된 개념을 제기해주고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과학을 무지의 무에서 시작해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며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사실을 축적해서 이론을 구축한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축적된 지식의 용기로부터 썩은 사과만을 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잘못을 폭로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론의 용기는 항상 가득 차 있다. 과학은 그 출발로부터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정교한 맥락과 함께 움직여왔기 때문이다. ... 과학은 추가가 아니라 교체에 의해 진보한다. 용기가 항상 가득 차 있었다면, 썩은 사과는 더 나은 사과가 추가되기 이전에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 p. 510

당연히 이것은 과학활동을 하는 과학자들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윈이 <비글호 항해기>에서 언급한 그 유명한 문장에서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고 이야기했듯, 우리 역시 과학과 사회에 대한 이중의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그룹의 투쟁이 우리 전체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공허한 수사가 아니다. - p. 190


<개인적인 사족>

1. 지루한 사례들이 열거되어서 그리 읽기 쉬웠던 책은 아닌데, 끝까지 읽다보면 지난해 동아리 문집에서 결론 짓지 못했던 문제에 일말의 해답을 주지 않을까 해서 꾸역꾸역 읽었다. 근데 끝까지 그런 말은 없다. -_- (내가 추론을 못한 것일 듯.) 다만, 과학을 이용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경우, 혹은 이를 반박하는 경우에 흑인, 여성의 태생적인 신체적 차이와 중도에 획득된 장애라는 성질은 근본적으로 다른 근거로 다루어져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2. 제목인 <인간에 대한 오해>는 '백인, 남성, 상류층 (그리고 아마도 비장애인)'인 인간(man)에 대한 오해로 해석할 수도, 인간의 이성의 꽃인 과학과 과학자들에 대해 일반인이 생각하는 오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책 표지에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잘못된 척도에 대한 비판이라고 써있다.)

3. nature vs. nurture의 논쟁은 의미없는 것이라고 지은이가 이야기하긴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너쳐'가 우세하다고 생각하는 쪽. 삼수해서 고대 경영학과 간 친척오빠가 가장 잘 나가는 우리 집안사(-_-)를 살펴볼 때, 나의 선전은 어린 시절부터 무식하게 책을 읽혔던 엄마의 양육시스템의 영향인 듯 하기 때문이다. 획득성질은 유전이 되지 않는 바, 나의 자식들에게도 똑같은 양육방식을 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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