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고양이나라

블로그 이미지
똑똑해지고 싶은 정글 속 초록 고냥이 :D
룡럽룔

Article Category

책읽기 기록장 (63)
문학 (18)
과학 (21)
인문/사회 (14)
예술/취미 (5)
때때로, 영화 (5)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Calendar

«   2012/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

  • Total14,248
  • Today0
  • Yesterday2

계란빵과 소인수분해.


이 이야기는 내가 나중에 유명한 학자가 되어서 자서전을 쓰게 되면 chapter2 쯤에 쓰려고 했는데; 유명한 학자가 안될 수도 있으니 미리 써둬야겠다.


초등학교 2학년 한 학년동안 집안 문제 때문에 학교를 멀리 다녔다. 엄마는 매일 버스로 20분쯤 되는 거리를 나를 업고 등하교를 함께 했다. 오가는 길이 멀어서 징징대던 나에게 엄마는 내기를 제안했는데, 자동차의 번호판의 각 자리수를 누가 빨리 더하나 하는 것이다. 내가 이기면 엄마가 계란빵을 사주기로 했고, 엄마가 이기면 그만 징징대기로 했다. 처음 몇 주는 내가 졌는데 그 이후로 쭉 나는 계란빵을 먹을 수 있었다. 고학년이 되어서 소인수분해를 배우면서 나는 네 자리 번호판을 소인수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버릇은 자동차의 번호판을 소인수분해하는 것이다.


버릇이 뭐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가끔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데, 다들 잘 믿지 않는다. 의외로 대부분의 수는 쉽게 소인수분해가 된다. 가우스의 소수 정리를 알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운데, N까지의 소수의 개수는 1/log N에 '근사적으로'(이 것이 리만 가설을 접근해내는 핵심!) 비례하여 적어진다. 10까지의 소수보다 100까지의 소수가 적고(1/log10->1/log100), 100까지의 소수보타 1000까지의 소수가 훨씬 적다. (1/log100->1/log1000) 실제로 작은 소수로 분해가 안되어 23까지 나눠본 번호판을 몇 안되는 것 같다. (응용 : 자주보는 차번호로 소인수분해해봅시다. 1407=3*7*67, 6265=5*7*179 -_-)b)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실상 소수가 아니라 합성수이다. 소인수분해가 편하게 되니깐. 소수에 대한 어줍잖은 작은 관심은 이렇게 계란빵을 미끼로 한 영재교육으로 시작된 것이다. -_-)/


<코펜하겐>


책의 내용이 아니라 이렇게 긴 옛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어려운 책을 내가 왜곡해서 이해한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최근 읽은 책에서 <코펜하겐>이라는 연극에 대한 짧은 리뷰를 읽었다. 연극은 하이젠베르크와 보어의 대화가 줄거리를 이루는데, 저자는 연극 내용 중 상대성 이론에 대한 대사를 비판했다. 상대성 이론을 (불확정성의 원리의 해석과 정반대로) 객관적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과학사적 발견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유명한 연극에서 연극작가가 심각하게 상대성 이론의 해석을 왜곡할 수 있냐고 분개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상대성 이론을 소피스트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하면서 이 것 역시 비판했다. 전자는 이해가 될 법도 한데, 후자는 솔직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극적인 대사를 위해서 극작가가 일부러 왜곡을 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왜곡을 해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어려운 이론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주절주절 대는 것이다. 나중에 훌륭한 학자가 되어서 읽어보면(-_-) 얼마나 쪽팔릴 것인가.


리만 가설 vs. 소수의 음악.


'리만 가설'의 리뷰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비교해서 썼다.


'리만 가설'과 '소수의 음악' 비교하자면, 이 책의 지은이가 훨씬 더 수학을 실재론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리만 가설 너머 어딘가에 분명하게 수학적인 실재가 존재한다고 가정을 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반면 '리만 가설' 책은 '가설'인 만큼 좀 더 조심스럽고 객관적으로 리만 가설의 역사를 조망하고 있는 듯하다. 많은 수학적 정리들이 리만 가설(이 참일 것이라는 가정)에 베이스를 두고 증명이 되었고,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언젠간 반드시 리만 가설이 증명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사토이의 책이 수학자적인 안목으로 리만 가설을 조망할 기회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중반을 넘어서면서 수학과 다른 학문의 관계가 중요하며, 수학이 작게는 수학자/과학자 사회 크게는 지식인 사회와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리만 가설'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유명한 리뷰 중 하나에서는 이를 '포스트모던적인 해석'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초큼만 더 잘난척을 하자면,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는 리만 가설이 어쩐지 양자역학과 연결될 것 같다는 예상을 했다.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가 설명되면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연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로 신기하게, 리만 가설의 영점의 배열과 무거운 원자의 에너지 레벨의 배열이 거의 일치를 이룬다. 원자의 에너지 레벨은 가장 간단한 수소에서만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을 뿐이고, 헬륨 이상만 되어도 근사적인 방법으로 레벨을 구할 수 밖에 없고 우라늄과 같은 큰 원자에 대해서는 실험적인 방법으로밖에 에너지를 구할 수 없다. 불확정성 때문에 무거운 원자의 에너지 레벨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필연적이라면 리만 가설의 영점이 모두 한 직선 위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혹여 이것이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와 어떤 연관을 갖지 않을까? 차라리 괴델의 원리에 의해 증명불가능이라고 밝혀진다면 그래도 참이긴 할텐데. 이 가설은 증명불가능하면서 거짓일 수는 없다고 하니. -_-!


Wir muessen wissen. Wir werden wissen. - Hillbert, David.


증명이 되든, 반례를 발견해내든(30억개의 영점을 찾았다고 하니 반례가 과연 발견될까?), 아니면 증명불가능으로 판명이 나서 참이 되든 간에,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되든 내가 살아있는 동안;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알게 되는 날, 계란빵을 100개 먹은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낄 것 같다. 물론 리만 가설이 정리가 되어도 나의 습관에는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소인수분해에 대한 문제는 리만 가설보다 더 복잡하다고 하니 그야말로 오.티.엘.이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prev Prev : [1] ... : [57] : [58] : [59] : [60] : [61] : [62] : [63] : Next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