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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인 세상에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권의 책이 신간으로 출판되고, 인터넷에는 광장이니 이슈공감이니 색다른 소재/특이한 형식의 글이 쏟아져 나온다. 클릭 한번만 하면 자신의 개인미니홈피에도 '사랑은~'으로 시작되는 짧은 글들을 채워놓을 수 있다. 블로그나 개인미니홈피가 상용화되어 일기 형식의 짧은 글들을 하루에도 몇개씩 생각없이 써내기도 하고, 나같은 대학생들은 한달에 에이포 몇매가 되는 글들을 그야말로 '토해내야' 한다. 정신없는 텍스트의 홍수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어떤 글이 좋은 글이며, 이러한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또 어떻게 써내야할지 길을 잃게 된다. 사실 나는 요즘 개인미니홈피를 정리하며 내가 써왔던 글들이 너무 쉽게 쓰여진 감정의 찌꺼기 같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쉬운 글들을 쉽고 빠르게 읽어내고, 또 쉽게 써낼 수 있다. 맘에 들지 않으면 삭제버튼을 누르면 그만이다. 나는 제대로 글을 쓰고 있는가, 내가 글을 써내는 행위가 나를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게 하는가?

글 쓰기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던 중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책을 만났다. 이 책은 우리 학교 대학신문에 추천도서로 올라온 책인데 마침 내 손에 들어오다니 어떤 인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들에 일말의 해답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받자마자 정신없이 읽게 되었다. 책을 처음 받고 이 책의 종류는 글쓰기에 대한 자기계발서+고전해설서 쯤 되는 책이라고 단정지었었다. '연암 박지원'에게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이 우리가 흔히 접해온 방식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뜻밖에 이 책은 역사팩션 소설이다. 연암 박지원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는 '김지문'이라는 가공의 주인공이 선생이 내주는 숙제를 하나하나 완수해가며 좋을 글을 쓰는 방법을 터득해내는 식이다. 그리고 일종의 액자구성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연암의 아들인 박종채가 '연암협일기'라는 소설을 읽고 소설 (액자) 내에서 연암과 김지문의 배움과 가르침이 전개된다.  

책에서는 독서하는 방법과 글을 쓰는 방법이 여섯개로 분류되어있다. 이 책이 '글쓰는 방법'에 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독서하는 방법에 따로 장을 할애해 소설을 전개한 것은 그만큼 글쓰기에 올바른 독서가 선행되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쉽게 써내지만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어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읽지 않고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읽지 않고 써내는 글은 깊이가 없다. 자신의 생각만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잡담같은 글이 되어버린다. 이 책의 전반에 걸쳐서 '법고창신'의 정신을 역설하는데, 책을 읽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법고'의 과정은 필수이다. 이 과정을 간과하고 '창신'만을 강조한 글은 통찰력있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두 사람의 시선이 사이의 지점에서 교차하듯 글도 법고와 창신 사이에 자리해야 한다. 물론 어설픈 타협으로 만들어지는 중간 자리는 옳지 않다. 구별과 대립을 포섭하는 동시에 그 단계를 넘어서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책에서 좋은 글쓰기를 위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사이의 묘'이다. 어느 정도 정밀하게 독서의 과정을 거치다보면, 상충되는 두가지 의견을 만나기도 한다. 좋은 글은 이 상충되는 두 의견의 한쪽에 완전하게 흡수된 글이나, 두 글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타협을 보는 글이 아니라 이 '사이'에서 통합적 관점을 만들어 새로운 제 3의 시각을 제시해 나가는 글이다. 이것은 단지 글쓰기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문화상대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두 가지 의견을 만나면 문화상대주의의 관점으로 어느 쪽의 의견도 그 고유한 문화의 상대성을 고려해 모두 존중해야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서로의 의견과 문화는 존중해주는 것에서 끝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존중 속에서 서로의 의견 사이의 더 나은 생각들을 고려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발전을 이룩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연암의 입을 빌려 말하고 싶어하는 자세는 바로 이러한 '사이'의 미덕이 아닐까 한다. 고전과 현대의 삶 속에서 많이 달라 보이는 두 가지의 삶의 방식을 만나고, 그 속에서 책을 읽어내는 당사자가 어떤 제 3의 시각, 자신만의 생각들을 발견해 내는 것. 이것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워나가야 할 '미덕'일 것이다.

"우스갯소리 하나 해줄까. 포졸이 중놈을 포승줄로 묶어 끌고 가고 있었다. 중놈은 내내 도망갈 기회만 호시탐탐 노렸다.... 중놈은 주모를 구슬려 포승줄을 푼 다음 포졸과 옷을 바꿔 입고 머리를 밀어버린 뒤 포승줄로 그를 묶어버렸다...... 포졸은 세상 모르고 자다가 아침에 깨어 ....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중놈은 여기에 있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에 있는걸까?"

이 서평의 처음에 텍스트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라고 이야기했는데, 홍수가 났다고 꼭 물결에 휩쓸려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많은 책을 읽고, 자신의 관점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명확한 관점을 세워 이 관점을 중심으로 다른 책들을 만나고 그 생각들 속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피력해나간다면 혹 글재주가 없거나, 글을 전개해나가는데 소질이 없더라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제시해주지는 않는다는 데에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적어도 어떤 식으로 좋은 글을 써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았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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