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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면 가장 먼저 보는 코너가 '자연과학'인 내게, 요새 출판업계의 베스트셀러 선정은 분노를 자아낼만 한 것이다. -_- 얼마전 반디앤루니스에서 자연과학 베스트 10에 꼽힌 도서중 9권이 건강, 골프, 요리, 와인 관련 서적이고(이게 왜 자연과학이냐고!) 그나마 10위가 도킨스 옹의 이기적 유전자 20주년 증보판인 것을 보고, 작게는 출판업계를, 크게는 우리나라의 국민성을 생각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던 적이 있다. 인터넷 서점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이런 책 가운데에서도 종종 '쉽게 읽는 xxx 시리즈', '멘사 xx 퍼즐'의 책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위안이랄까.

그래서 내가 '과학의 대중화'를 주장하고 있느냐면 그건 아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과학화'이다. 단지 과학을 대중과 친밀하게 하는 것이라면, 다운그레이드시킨 과학의 '하향평준화'는 분명 효과적이다. 단지 그것에서 그쳐선 안된다. 쉽고 재미있기 '때문에'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린아이같은 생각이 아닌가. 과학, 자연과 인간인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과학 그 자체를 통해 느끼는 재미, 그것이 타학문과 다르게 과학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딴엔 그것이 과학의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도킨스 옹의 말을 빌리자면

"배타적인 건방짐과 사람들로 하여금 실력을 향상시켜 엘리트가 되도록 독려하는 친절한 엘리트주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다 있다.(p. 51)"

좀 더 흥미있었던 부분은, 점성술이나 마술, 신비주의에 대한 시원한 비판이었는데, 다만 이 책에서 도킨스 옹이 너무나 많은 내용을 다루려고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짧았던 것이 아쉽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의해 선동된 점성술, 신비주의, 외계인 방문 등의 이야기는 대중에게 연결되는 전용 도로를 독점한다. 이런 경향이 경이로움에 대한 우리의 자연스럽고 건전한 열망을 남용한다면 역설적이게도 여기에 희망의 근거가 있다. 경이로움에 대한 열망은 진정한 과학이 만족시켜 주기 때문에 미신에 대안은 그저 교육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의심이 든다. (p.217)


책의 핵심은 최고의 과학이 시적 감수성이 설 자리를 마련해야한다는 것이다. 과학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익한 비유와 은유를 제공하고 직접적인 이해 이상의 인상과 암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단, 나쁜 시적 과학은 경계해야한다.

우화처럼 동물을 모델로 삼는 생각 자체가 나쁜 시적 과학의 한 부류이다. 동물은 모델로서 추앙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존재한다. (p. 319)


왜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냐면, 나쁜 시적 과학을 가지고 인간 사회를 정당화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도대체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 사회에서도 강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사회의 강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던가, 동물에게 동성애가 없기 때문에(이건 나쁜 시적 과학일 뿐 아니라, 사실도 아니다. -_- 뭘 알고 말하던가.) 인간의 동성애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죄악이라고 주장한다던가, 다윈의 진화론을 지들 편한대로 해석해서 인간사회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이들은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던가.

예전에 읽었던 도킨스 아저씨의 글은 너무 노골적이고 직설적이어서,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물론 도킨스 아저씨가 책을 쓴 순서와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순서가 다르기 때문의 나이들어가며 부드러워지는 문체의 차이라고는 말할 수 없고;) 하지만 이 책은 과학과 인간의 이성에 대한 낙관적인 신뢰가 두드러져 보여서 멋졌다. 나는 과학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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