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쪽.
과학으로 종교를 증명하기.
- 과학적으로 증명된 종교의 증거(예수님의 수의, 복잡한 생명체의 mechanism에서 '자명하게 도출되는' 절대자의 존재)들이 종교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많은 신학자들에게 사용되지만, 종교를 반증하려는 증거들에 대해서는 ‘신은 과학적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며 (왜냐면 신이니까!)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는 듯. 둘 중 하나를 버리는 게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전자!)
97쪽.
‘기도하다’라는 동사에 대한 앰브로즈 비어스의 재치 만점의 정의 - “지극히 부당하게 한 명의 청원자를 위해서 우주의 법칙들을 무효화하라고 요구하는 것”
103쪽.
비록 선한 신이 우리의 고통을 한탄할지라도,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우리 각자가 인내, 동정, 관용을 보여주고 그럼으로써 성스러운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심하게 앓아야 하고, 일부 사람들은 남들에게 중요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앓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선택할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병이 그다지 가치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 라이프니츠 ‘더 큰 완전성을 위해?’
181쪽.
"나는 언제라도 무지의 경외감보다는 이해의 경외감을 택할 겁니다. "
230쪽.
어느 한 종류의 입자, 이를테면 전자의 개수가 많다는 점을 근거로 스윈번은 그렇게 많은 입자들이 같은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 하나라면 괜찮다. 하지만 특성이 똑같은 전자가 무수히 많다는 것은 정말로 그의 회의심을 자극한다. 그는 모든 전자가 서로 다르다면 더 단순하고 더 자연스러운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 전자는 입자이며 파동인데 물질파 이론 혹은 미시입자를 측정할 때 변덕스러워지는 입자의 성질은 어찌 설명할 것입니까? 그래도 나는 변덕스러워보이는 물질파 이론으로 신을 부정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249쪽.
어떤 야생동물이 습관적으로 어떤 쓸데없는 행동을 한다면 자연선택은 시간과 에너지를 생존과 번식에 투자하는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개체를 선호할 것이다. 자연은 경박하고 기발한 착상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설령 늘 그렇게 보이지는 않더라도, 냉혹한 실용주의가 이긴다.
- 지적설계론을 비판하기 위해 다위니즘을 인격화 혹은 강한 의인화 하는 거 같음. -_-;
276쪽.
만물에 목적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론이라고 한다.
- 과학 교과서가 말하는 것도 비슷해 보인다. 왜 RNA에는 hydroxy기가 잇는가? 가수분해가 쉽게 되기 위해.. 이건 아냐. -_-;
328쪽.
호혜적 이타주의는 필요와 그것을 충족시킬 능력의 비대칭 때문에 나타난다. 그것이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 유독 더 잘 나타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비대칭이 더 크기 때문이다.
- 진화생물학의 표현들에서 간혹 혼란스러운 것은 ‘친족이 같은 유전자의 ~ 높기 때문에 돕는다’ 식의 표현인데 마치 진화론을 관리하는 혹은 설계한 절대가가 존재한다는 느낌. 마치 ‘구름은 비를 내리기 위해 만들어진다’ 같이. 차라리 (나같은 이해부족인에겐) ‘~높기 때문에 진화에서 살아남았고 그것이 자연선택되어 돕게 되었다’ 식의 표현이 나은 듯 하다.
354쪽. (CHAPTER 6-도덕의 뿌리 : 우리는 왜 선한가?)
-정리가 매우 안된다. 주관적인 정리를 해보면ㅡ
신-> 도덕 명제의 반론.
1. 진화적으로 남을 돕게 진화되어 왔다. (친족가능, 다시 돌려받을 가능성)-> 지나치게 일반적임.
2.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종교인/비종교인을 아우르는 인간 공통의 도덕률이 존재한다.
3. 칸트 등의 철학자들은 비종교적 근원에서 절대적 도덕을 이끌어냄 -> 도킨스씨 의견은?
* 도킨스씨의 의견은 이것인가? (내 평소 생각과 비슷하다)
- 진정 도덕적이기 위해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아첨하기 위해’ 선을 행하는 것이 덜 도덕적이라고? 그럼 우리는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하지? 진화적으로 그렇게 진화되어왔으니까? 이성에 절대적인 도덕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358쪽.
우리는 성서에서 어느 부분은 골라서 믿고, 어느 부분은 상징이나 우화로 간주한다. 그렇게 취사선택하는 행위는 무신론자가 절대적인 근거없이 이 도덕 규정이나 저 도덕 규정을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판단의 문제이다. 어느 한쪽이 ‘직감에 좌우되는 도덕’이라면 다른 한쪽도 그렇다.
363쪽.
판관기 19장 25-26절.
- 나도 이거 읽고 화났음. -_-;
375쪽.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이런 말을 했다.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다. 그것이 있든 없든, 선한 사람은 선행을 하고 나쁜 사람은 악행을 한다. 하지만 선한 사람이 악행을 한다면 그것은 종교 때문이다.” 파스칼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람은 종교적 확신을 가졌을 때 가장 철저하고 자발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
398쪽.
신 십계명
1. 남들이 당신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2. 매사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다.
3. 당신의 동료 인간들, 동료 생물들, 나아가 세계 전체를 사랑과 정직과 성실과 존경으로 대하라.
4. 악을 못 본 척하지 말고 정의를 구현하는데 주저하지 말라. 그러나 잘못된 행위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심으로 후회한다면 언제라도 용서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
5. 기쁨과 경이로움을 느끼며 살아라.
6.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라.
7. 모든 것을 시험하라. 늘 자신의 생각을 사실에 비추어 점검하고 설령 소중히 믿는 것이라고 해도 사실에 부합되지 않으면 폐기할 태세를 갖추어라.
8. 검열을 하지도, 이의를 막으려 하지도 말라. 다른 사람들의, 다른 의견을 낼 권리를 늘 존중하다.
9. 자신의 이성과 경험을 토대로 독자적인 견해를 수립하라. 남들에게 맹목적으로 끌려 다니지 말라.
10. 모든 것에 의문을 품어라.
410쪽.
시대정신이 변하는 것이 관찰된 사실이며 종교가 그것을 이끌지 않는다는 것(성서는 분명히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은 아마 중력 같은 단일한 힘이 아니라, 컴퓨터 성능의 기하급수적 향상을 가리키는 무어의 법칙을 추진시키는 것과 같은 다양한 힘들의 복합 상호 작용일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시대정신의 진행이라는 명백한 현상은 우리가 선하기 위해 또는 무엇이 선한지 판단하기 위해 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무너뜨리고도 남는다.
428쪽.
아마 과학자들은 ‘진리’라는 것의 의미를 어떤 추상적인 방식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자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한다. 내가 뉴질랜드가 남반구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때 근본주의자가 아니듯이 진화가 사실이라고 말할 때에도 나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증거가 진화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진화를 믿으며, 그것을 반증하는 새 증거가 나오면 단번에 그것을 버릴 것이다. 진짜 근본주의자라면 결코 그것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467쪽.
종교 신앙은 신앙이기 때문에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한, 빈 라덴과 자살 테러범들의 신앙에 대한 존중을 유보하기도 어렵다. 너무나 평범하기에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는 대안이 하나 있다. 그것은 종교 신앙을 자동적으로 존중하라는 원칙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갖은 노력을 다하며 사람들에게 ‘극단주의’ 신앙이 아닌 신앙 자체를 반대하라고 경고하는 한 가지 이유다.
- 극단주의를 내재하기 때문에 신앙에 반대하는 것인가?
493쪽.
‘하지만 못해. 어떻게 신을 믿지 않을 수 있지? 나는 신이 필요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게다가 신을 믿지 않는 법을 모르겠어.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아침에 어떻게 일어나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지?’ 혼란스러웠습니다.
540쪽.
내가 아는 무신론자 대다수가 경건한 겉모습 뒤에 무신론을 숨기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지만, 비합리적인 믿음에 대한 모호한 애착심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믿음을 믿는다. “X는 참이다.”와 “X가 참임을 믿는 것이 바람직하다”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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